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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필사 & 시낭독680

안녕, 드라큘라 - 하재연 [2021 시필사. 164일 차] 안녕, 드라큘라 - 하재연 당신이 나를 당신의 안으로 들여보내준다면 나는 아이의 얼굴이거나 노인의 얼굴로 영원히 당신의 곁에 남아 사랑을 다할 수 있다. 세계의 방들은 처음부터 끝까지 햇살로 가득하지만, 당신이 살아있는 사실, 그 아름다움을 아는 이는 나 하나뿐. 당신은 당신의 소년을 버리지 않아도 좋고 나는 나의 소녀를 버리지 않아도 좋은 것이다. 세계의 방들은 온통 열려 있는 문들로 가득하지만, 당신이 고통스럽다는 사실, 그 아름다움을 아는 이는 나 하나뿐. 당신이 나를 당신에게 허락해준다면 나는 순백의 신부이거나 순결한 미치광이로 당신이 당신임을 증명할 것이다. 쏟아지는 어둠 속에서 우리는 우리의 아이가 아니라 우리 자신을 낳을 것이고 우리가 낳은 우리들은 정말로 .. 2021. 6. 18.
셜록 홈즈 중고 가게 - 이성미 [2021 시필사. 163일 차] 셜록 홈즈 중고 가게 - 이성미 셜록 홈즈는 의기소침하게 노년을 보냈지. 기술을 살려 예술을 해볼까, 어느 날 여생에 대해 생각하다가. 셜록 홈즈 중고 가게를 열었어. 처음 한 작업은 탈모로 고생하는 개에게 고양이의 털을 이식하기. 홈즈는 고객에게 단서를 달았대. 개는 더듬더듬 걷게 될 것입니다. 내일 할 일은 햇볕을 쬔 모래알을 밤하늘에 뿌려 놓기. 손끝으로 별을 보게 하고 싶어요. 고객은 딸을 위해서라고 울먹거렸대. 내일 밤은 까끌까끌 깊어갈 것입니다. 명함 뒷면에는 이렇게 적었지. 똑같이 만들 수는 없습니다. 홈즈는 고양이처럼 골목을 돌아다니며 재료를 찾아다니지. 말레비치 가족이 버린 정사각형. 몬드리안 가족이 버린 직사각형. 각이 안 맞아 버린 것에서 더 나은 도.. 2021. 6. 18.
지나간 겨울 이야기 - 조현정 [2021 시필사. 162일 차] 지나간 겨울 이야기 - 조현정 다시 필까 꽃이 피면 좋겠어 다시 꼭 과수원에 든 겨울 속을 서성이던 나도 겨울이었지 겨울 과수원에서 돌아앉은 바람 울타리쯤 사는 늙은 느티나무에게 새 점괘를 들으러 가는 길 조금만 걸어도 금세 죽을 것 같았어 하늘 끝까지 숨이 닿는데 서둘러 바람을 풀어 그가 전갈을 보냈더군 서둘지 말거라 겨울은 하루씩만 견디는 거란다 봄은 늘 거기 있었단다 우리가 가는 거란다 아이야 꽃은 언제나 다시 피면 좋겠어 #지나간겨울이야기 #조현정 #시필사 #닙펜 #딥펜 #펜글씨 #손글씨 #매일시쓰기 #1일1시 #하루에시한편 #이른아침을먹던여름 #thatsummerwithyou 2021. 6. 18.
처음 가는 길 - 도종환 [2021 시필사. 161일 차] 처음 가는 길 - 도종환 아무도 가지 않은 길은 없다 다만 내가 처음 가는 길일 뿐이다 누구도 앞서 가지 않은 길은 없다 오랫동안 가지 않은 길이 있을 뿐이다 두려워마라 두려워하였지만 많은 이들이 결국 이 길을 갔다 죽음에 이르는 길조차도 자기 전 생애를 끌고 넘은 이들이 있다 순탄하기만 한 길은 길 아니다 낯설고 절박한 세계에 닿아서 길인 것이다 #처음가는길 #도종환 #시필사 #닙펜 #딥펜 #펜글씨 #손글씨 #매일시쓰기 #1일1시 #하루에시한편 #이른아침을먹던여름 #thatsummerwithyou 2021. 6. 10.
자화상(自畵像) - 윤동주 [2021 시필사. 160일 차] 자화상(自畵像) - 윤동주 산모퉁이를 돌아 논가 외딴 우물을 홀로 찾아가선 가만히 들여다 봅니다. 우물 속에는 달이 밝고 구름이 흐르고 하늘이 펼치고 파아란 바람이 불고 가을이 있습니다. 그리고 한 사나이가 있습니다. 어쩐지 그 사나이가 미워져 돌아갑니다. 돌아가다 생각하니 그 사나이가 가엾어집니다. 도로 가 들여다 보니 사나이는 그대로 있습니다. 다시 그 사나이가 미워져 돌아갑니다. 돌아가다 생각하니 그 사나이가 그리워집니다. 우물 속에는 달이 밝고 구름이 흐르고 하늘이 펼치고 파아란 바람이 불고 가을이 있고 추억(追憶)처럼 사나이가 있습니다. #자화상 #윤동주 #시필사 #닙펜 #딥펜 #펜글씨 #손글씨 #매일시쓰기 #1일1시 #하루에시한편 #이른아침을먹던여름 #that.. 2021. 6. 9.
아침 - 유희경 [2021 시필사. 159일 차] 아침 - 유희경 어둠이 마음을 거두고 사방에서 빛이 번지기 시작할 때, 아무 말도 하지말아요. 뒤척여 스스로 자리를 마련하려는 소리들에 대해, 간밤 당신이 말하려고 했던 것들에 대해, 그러나 말하지 못한 것들에 대해, 꿈과 함께 가라앉아버린 감정들에 대해, 그러나 기어코 오늘도 사랑해야 하는 당신의 사람들에 대해, 말하지 말아요. 이 무렵, 당신의 반대편 어느 하늘에는 달이 밝아오고, 사람들이 혼곤한 잠에 빠져들기 시작한다는 우연한 필연에 대해, 그 비밀 많음에 대해, 그런 것으로 가득한 생에 대해, 아직 당신에게 일어나지 않은 일들의 없음과, 곧 일어난 어떤 일들의 아직 없음에 대해 그 가능의 불가피함에 대해서도 아무 말도, 아무 말도 하지 말아요. #아침 #유희경 #.. 2021. 6. 8.
빛의 모퉁이에서 - 김소연 [2021 시필사. 158일 차] 빛의 모퉁이에서 - 김소연 어김없이 황혼녘이면 그림자가 나를 끌고 간다 순순히 그가 가자는 곳으로 나는 가보고 있다 세상 모든 것들의 표정은 지워지고 자세만이 남아 있다 이따금 나는 무지막지한 덩치가 되고 이따금 나는 여러 갈래로 흩어지기도 한다 그의 충고를 따르자면 너무 빛 쪽으로 가 있었기 때문이다 여러 개의 불빛 가운데 있었기 때문이다 다산(茶山)은 국화 그림자를 완상하는 취미가 있었다지만 내 그림자는 나를 완상하는 취미가 있는 것 같다 커다란 건물 아래에 서 있을 때 그는 작별도 않고 사라진다 내가 짓는 표정에 그는 무관심하다 내가 취하고 있는 자세에 그는 관심이 있다 그림자 없는 생애를 살아가기 위해 지독하게 환해져야 하는 빛들의 피곤이 밤을 끌어당긴다 지금은 .. 2021. 6. 7.
1막 1장 - 김이듬 [2021 시필사. 157일 차] 1막 1장 - 김이듬 뇌우는 천둥과 번개를 동반한다 시골 단층 사진관 안에서 두 사람이 대화를 하고 있다 하면 할수록 어려워요 숙련된다면 기술이지 아름다운 건 더럽게 어려울 거야 쉽게 느는 게 아니라고 기술과 예술의 차이를 말하는 두 사람을 나는 못 본 척한다 비가 그치기 전에 현상됩니다 아래에서 사람이 등장한다 무대 뒤에도 사람이 있다 극은 짧고 일반적으로 사랑을 다룬다 #1막1장 #김이듬 #시필사 #닙펜 #딥펜 #펜글씨 #손글씨 #매일시쓰기 #1일1시 #하루에시한편 #이른아침을먹던여름 #thatsummerwithyou 2021. 6. 6.
달빛체질 - 이수익 [2021 시필사. 156일 차] 달빛체질 - 이수익 내 조상은 뜨겁고 부신 태양 체질이 아니었다. 내 조상은 뒤란처럼 아늑하고 조용한 달의 숭배자였다. 그는 달빛 그림자를 밟고 뛰어놀았으며 밝은 달빛 머리에 받아 글을 읽고 자라서는, 먼 장터에서 달빛과 더불어 집으로 돌아왔다. 낮은 이 포근한 그리움 이 크나큰 기쁨과 만나는 힘겨운 과정일 뿐이다. 일생이 달의 자장 속에 갇히기를 원했던 내 조상의 달빛 체질은 지금 내 몸 안에 피가 되어 돌고 있다. 밤하늘에 떠오르는 달만 보면 괜히 가슴이 멍해져서 끝없이 야행의 길을 더듬고 싶은 나는 아, 그것은 모체의 태반처럼 멀리서도 나를 끌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마치 보이지 않는 인력이 바닷물을 끌듯이. #달빛체질 #이수익 #시필사 #닙펜 #딥펜 #펜글씨 #손.. 2021. 6.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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